베란다로 온 손님

도모꼬에게 카톡이 왔습니다. 베란다 밖 화분에 웬 새가 둥지를 틀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쳐다보고도 가만히 있다는 군요. 퇴근 후 곧장 문제의 장소(?)로 향했습니다. 지난겨울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공간 쪽 창문이었습니다. 유리창 닦이를 구입할 동안은 그대로 둘 예정이었기에, 특별히 들여다볼 생각도 없던 곳이었지요. 지난 해 상추를 키웠던 플라스틱 화분에 새가 앉아있었습니다. 우린 첫 만남에 한참을 서로 바라보았습니다. 동그랗고 귀여운 눈을 하고 있었지만, 부리는 매서워보였습니다. 제 첫 인상이 어땠는지 궁금하군요. 새가 알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기하고 반가운 한편 걱정이 되었습니다.

나는 저 창문을 닦고, 화분을 비워야 하는데.

이른 봄 처음으로 올라오는 부추는 사촌도 안 준다고 할 정도로 귀합니다. 도모꼬와 저는 그 귀한 부추와 두릅으로 전을 부쳐 저녁식탁에 올렸습니다. 생명력이 물씬 느껴지는 맛이었습니다. 그러다 제가 물었습니다.

나 : 이제 저 친구 어떡하지?
도모꼬 : 어떡하긴. 알 품고 있는데 내보낼 수도 없어.
나 : 그전 까진 베란다 청소 못 하겠네?
도모꼬 : 새끼들 부화해서 다 클 때 까지 기다려야해.
나 : 월세를 받아야겠는걸. 언제쯤?
도모꼬 : 언제쯤 일까나…

무슨 새일까 궁금해졌습니다. 다시 나가보니 새가 잠시 자리를 비웠더군요. 그때 알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식탁 위 부추전을 가운데 두고,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사진 속 알들을 관찰했습니다. 메추리알이 아닐까 싶은 생각에 바로 구글링을 했습니다. 우린 메추리의 생김새를 잘 몰랐으니까요. 메추리알 요리 사진들 사이에서 메추리의 모습을 발견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짐작은 틀렸더군요. 문제는 미궁으로 빠지고, 우리의 화제는 두릅의 맛에 대한 감탄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다 불현듯이 베란다 새의 부리가 날카로웠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맹금류 맹금류… 오! 황조롱이?!!

다시 찾아보니, 황조롱이가 맞았습니다. 오오 구글 사장님 감사합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위키피디아의 해당 항목을 열어보았습니다.

도모꼬 : 황조롱이는 직접 둥지를 짓지 않고…
나 : 오오.
도모꼬 : 고층 건물 옥상 부근의 창가나 틈새에서 번식하기도…
나 : 오오오!
도모꼬 : 4-5월에 4-5개의 알을 낳는다…
나 : 오오오오!!
도모꼬 : 알은 품은 지 27-29일 만에 부화하고…
나 : 그렇게나 오래!
도모꼬 : 어미는 27-30일간 새끼를 키운다!!
나 : 뭐라고?!!!!!
도모꼬 : ㅋㅋㅋ
나 : 아무튼 천연기념물 제323-8호님께서 저희 집에 오시다니, 영광입니다. 앞으로 약 두 달 가량 포란 및 육아에 신경 쓰이시지 않도록, 알아서 처신 잘 하겠습니다. “내 집이다~”하고 편히 지내십시오. 굾굾-

2014년 4월 21일, 이렇게 우리의 동거(?)가 시작되었습니다. 최초 목격자에 대한 이야기를 빠뜨릴 뻔 했군요. 이곳에 미리 터를 잡은 ㅂ씨(약 4세, ♀)는 최근 며칠 간 창 밖을 바라보기를 즐겼습니다. 그러려니 했는데, 오늘에서야 이유를 알게 되었네요.


응? 아니 내가 뭘 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