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집과 함께한 만국의 트잉여 여러분께 드리는 편지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지난 4년간 은혜의집 트위터 계정(@Ecommune)을 운영한 오창열 사회복지사입니다. 그동안 감사했다는 말씀을 여러분께 전하고 싶은데, 140자로는 부족할 것 같아서 트위터 밖에서 작별인사를 드리게 되었네요. 저는 이곳의 일을 매듭짓고, 2월부터는 어느 정신건강병원으로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시간 동안 제가 하는 일을 응원해주시고, 노숙인의 인권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해주시고, 은혜의집을 믿고 사람들에게 홍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노숙인 문제에 함께 공감하고 마음을 보태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마웠습니다.

 

지난 7년을 떠올렸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200명이 넘는 이용자분들과 작별인사를 나눴습니다. 어떤 사람과는 간결하게 인사를 나눴고, 어떤 사람과는 함께 했던 추억을 나눴습니다. 마지막 나누는 인사를 통해 지난날의 조각들을 하나씩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들과의 인사를 마친 후 지난 7년을 곰곰히 되돌아봤습니다. 물론 트위터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군요. 많은 이들이 ‘홈리스봇’을 좋아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1. 기억하는 분도 계시겠지요. 이 계정을 통해 저는 많은 따뜻한 이들과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집해 중창단을 꾸린 후, 매주 구립합창단원 선생님들의 지도를 받아 연말에 공연했던 기억이 납니다. 언젠가는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고, 글솜씨와 언변이 좋은 이용자 분들을 섭외해 공동체 라디오를 기획해 진행한 적도 있었습니다. 어떤 때엔 어르신들의 건강유지를 위해 생활체육회와 연계해서 운동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고요.

“인권교육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필요성을 못 느낄지라도 인권에 대해 배우는 것 자체가 하나의 권리”

라는 생각으로 국가인권위원회와 연계해서 매년 2차례 인권교육을 맡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때론 버지니아 사티어의 경험주의 가족치료를 적용한 집단상담을 직접 진행하기도 했고, 때로는 EFT라는 심리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 강사를 모시기도 했습니다. 그 지원 받기 어렵다는(ㅋㅋ) 한국예술인복지재단으로부터 사업비를 받아 손병걸 시인님과 함께 ‘문예반’을 재미있게 꾸려나간 적도 있군요. 거의 500명을 먹이는 ‘삼겹살 무한리필 파티’를 두 번, 일일 장터 행사도 두세 번 치렀습니다. 그런 행사를 치르고 나면 멘탈과 육신이 바스러지곤 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실무분과 위원, 서울역 노숙인 위기관리요원, 전국노숙인실태조사(PET) 인천지역 총괄코디네이터 등의 일을 맡았습니다.

사실 홍보와 모금, 사회복지 자원봉사 인증관리요원(VMS) 같은 것들이 저의 주된 역할이었습니다. 사랑의열매(사회복지공동모금회)나 포스코에너지, 민주노총 지엠 노조 등에서 얼마를 지원받게 되었다고 트위터에서 노상 떠들던 게 바로 이 일이었습니다. 후원회원의 규모는 전에 없는 팽창기를 맞았고, 자원봉사단체 역시 증가했습니다. 후원회원이 생길 때마다, 누군가가 물품을 보내올 때마다 직접 감사의 전화 또는 문자를 드렸습니다(혹시 제 연락 못 받으신 분께는 죄송합니다. ㅠㅠ). 은혜의집과 함께 하는 모든 사람이 진심으로 소중했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현재 진행형 문제

 

한때 지역주민이었던 이가 가방을 들고 이곳을 찾아옵니다. 이유는 다양합니다. 빚이 너무 많아서, 고시원비가 떨어져서, 일거리가 없어서,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몸이 아픈데 돈이 없어서, 외로워서, 갈 곳이 없어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의 중요한 공통점은 바로 ‘잘 곳’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반복지 정책들이 최악을 갱신하고 있는 가운데, 며칠 전 ‘생애 처음’으로 이 노숙인 시설을 찾아온 사람의 수를 세어봤습니다. 2014년에는 256명, 2015년에는 167명이었고 그중 50명은 여성이었습니다. 가난의 깊은 벼랑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2년 동안 423명의 신규 노숙인이 생겨났다는 건, 적어도 300개 이상의 가정이 깨졌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 다른 비극적인 사실도 있습니다. 겨울철 노숙인 동사 예방을 주목적으로 운영 중인 ‘해오름 일시보호상담소’에는 일 년 내내 발길이 끊기지 않는데, 그 수가 매해 1,000여 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가난이란 단지 돈이 충분치 않다는 것 이상입니다. 가난은 결코 혼자 있지 않습니다. 원인과 결과가 불분명한 일련의 어려움이 가난 곁에 엉겨있습니다. 신용불량과 실직, 정신적·신체적 아픔과 알코올중독과 장애, 교도소 전과, 가정폭력과 이혼과 사별의 아픔, 자살 시도 같은 것들이죠.

장애가 있는 것이, 실직하거나 빚이 많다는 것이, 만성질환이나 정신병이 있는 것이 가난과 직결되지 않는 사회, ‘그것이 그럼에도’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받쳐주는 사회가 되기를 저는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 먼 곳 앞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해나갈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잘하기 위해서는 공부와 연습이 필요합니다. 저는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더 잘 돕기 위해, 저는 ‘공부’라는 새로운 결정을 내렸습니다.

 

정신보건 사회복지사로서의 출발

 

이 현장의 다정한 동료들과 가치 있는 과업들을 뒤로하고, 해보고 싶었던 다른 일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일은 ‘정신보건 사회복지’라고 부릅니다. 그것의 자격조건을 갖추기 위해 1년간 수련을 받을 예정입니다.

제가 수련기관으로 선택한 정신병원에는 450명이 넘는 환자들이 입원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만성적으로 알코올 의존이나 조현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수이고, 그중 20% 정도는 노숙인입니다. 바로 7년간 제가 만나왔던 이들입니다.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칠 수밖에 없었던,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가난한 이들이 그곳에 많이 있습니다. 거리에서 사회복지기관으로, 사회복지기관에서 정신병원으로 옮겨간 이들입니다. 정신병을 가진 이들에게도 사회복지사가 필요합니다. 앞으로 사회복지기관이 아닌 의료의 영역에서 새로운 일을 하게 될 예정이지만, 지금까지 제가 해온 일들과 본질은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노숙인의 삶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제 작은 철학―

누구든지,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고,
그것은 누군가가 도와줄 필요가 있다

―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많은 이들의 염려와 만류가 있었음에도 이 선택은 미루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금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아직 젊습니다. 이 결정으로 인해 제가 잃는 건 겨우 1년 치 급여, 바로 돈밖에 없다는 거죠(사실 좀 크긴 하네요;). 그래서 당분간 생활이 불안정하고 불편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불편함을 다루는 법을 새롭게 배우게 되겠지요. 인생에서 가장 좋은 일들은 조금 힘들거나, 많이 힘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에 따르는 곤란을 외면하고, 단지 안전하기만 한 삶―과연 그런 게 있을지도 모르겠지만―을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앞으로 새로운 어딘가에 자리를 잡을 때도 여러분과 연결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다정하고, 선한 당신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2016년 1월 29일

사회복지사 오창열 드림

 

PS) 참, 제가 하던 일은 다른 든든한 동료가 이어서 갈 것입니다. 그에겐 강점이 많습니다. 해결해야 하는 덩어리진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명확히 조명하고, 실행할 수 있는 세부 과업으로 쪼개어 가공하고, 그것을 리듬감 있게 처리해나갑니다. 아주 멋지죠. 그러나 그에게 아쉬운 한 가지는 트위터에 흥미를 못 느껴서ㅋ큐ㅠㅠㅠ, 은혜의집 계정을 이어가진 않을 예정입니다. 그는 대신 카카오스토리인스타그램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