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 신해철을 꿈에서 만난 이야기

공연장에 들어섰다. 마왕 신해철로부터 직접 초대를 받은 공연이었다. 정상적인 공연장이라면 무대에서 멀어질수록 좌석이 높아진다. 이 공연장은 치솟은 바이킹 뱃머리처럼 무대 쪽이 가장 높았다. 그러나 아무 문제가 없었다. 객석은 예배당의 의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는 가장 앞자리에 앉았고, 함께 온 로메르는 내 오른쪽에 앉았다.

드러머는 객석 가까운 곳에서 무대를 등지고 앉아있었다. 얼마나 가까운지 의자를 만질 수도, 마음만 먹으면 등도 두드릴 수 있는 거리였다. 알고 보니 드러머는 로메르와 친분이 있는 사이였고, 잠깐 인사를 나누었다.

마왕은 내가 좋아했던 노래들을 불렀다. 모노크롬이나 비트겐슈타인으로 발매했던 노래들도 섞여 있었다. 그 가운데 지금 생각나는 곡은 ?I’m your man, 백수가, 매미의 꿈 정도이다(아쉽게도?민물장어의 꿈은 기억에 없다). 정말 좋았다. 최고였다. 어떤 곡에서는 2대의 드럼이 함께 연주되어 더욱 웅장하고 긴박한 느낌을 자아냈다. 노래를 부르던 그는 가끔 20개 남짓한 건반의 신시사이저를 연주하기도 했다.

그가 객석으로 내려와 흥분한 관객들 사이를 힘껏 내달리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내 옆은 그냥 지나치나 싶었더니, 120도 정도 고개를 돌려 나를 향해 멈춰 섰다. 웃어 보이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나도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았다. 그의 미소는 따뜻하고 친밀했다. 마치 자신의 결혼식이 시작되기 전, 소중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사람이 짓는 것 같았다. 반가움과 기쁨이 묻어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너와의 소중한 기억을 나 또한 모두 기억하고 있어’라는 의미까지 머금은 미소였다. 이 순간은 불과 1초 정도였다.

마왕은 공연장을 한 바퀴 돈 뒤 무대로 달려 들어갔다. 거울을 절묘하게 장치하여, 마왕과 무대가 상하로 길어져 보였다. 무대에 영상이 시작되면서 공연장 전체가 4D 체험 영화관으로 바뀌었다. 웅장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임정득의 미발표곡 『당신이 살지 않았던 세계에 관하여』가 흘러나와 공연장 공간을 가득 채웠다. 이는 마왕이 언젠가 자신의 공연 때 사용하고 싶다며 요청한 적이 있던 곡이다.

관객은 목재 의자에 앉은 채로 보라색 지하철 통로 사이를 빠르게 질주하는 것을 생생하게 경험했다. 바람이 실제로 느껴졌다. 눈발은 진짜였다. 이 곡이 끝나갈 때 즈음, 이 순간이 어렴풋하게 이해됐다. 꿈이다. 가능하다면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는 생각도 했다.

카톡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달콤한 꿈의 장막은 단칼에 베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잠에서 깨어났다. 시계를 보니 저녁 9시였다. 최근 누적된 피로로 초저녁에 쓰러져 잠들었던 것이다. 푹 잘 수 있었고, 좋은 꿈을 꾸었다는 정도의 느낌이 들었다. 잠깐, 마왕 신해철을 만났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며 지금 이 꿈을 기록하고 있다. 꿈결에서 완전히 벗어날까봐 꼼짝 않고 이불 속에 엎드린 채로.

 

마왕, 만나서 반가웠어요.
부디 안녕히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