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서 / 노래 부용산

#1 캘린더에 반복일정으로 등록

2014년 4월 16일부터 현재까지 세월호 참사가 진행 중입니다. 아니, 이건 틀린 말이군요. 이 참혹한 사고의 시작은 아주 오래전부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표독스러운 기업과 기업의 뒤를 봐주는 정부, 엉터리 언론, 업계와 유착한 규제기관, 부패한데다 무능하기까지 한 관료가 하루아침에 탄생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그리고 이 사고의 끝은 ‘이윤이 생명을 앞서지 않는 세상’이 왔을 때겠지요. 비약이 심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땐 문자로 해고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도 없고, 사기꾼의 표적이 되는 거리 노숙인이 없으며, 모든 핵발전소가 폐쇄될 것입니다. 이 참사의 끝을 확인할 때 까지 기억하고자 휴대폰 캘린더에 매년 4월 16일 알림설정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 가지 노래를 떠올렸습니다. 저는 기쁜 때 보다 그 반대일 때 노래를 부르고 싶어지는 편입니다. 이 노래를 부르며 저 나름대로의 감정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물론 밤 시간 이웃집에 방해될 것이 분명해서 두 번은 부르지 않았습니다.

#2 노래를 부르다

1947년 어느 날, 박기동 시인은 시를 한 편 지었습니다. ‘회오리 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급작스럽게, 그것도 너무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여동생에게 보내는 인사와 같았습니다.

이듬해 1948년, 목포의 한 중학교. 이 학교의 음악교사는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에 곡을 붙인 작곡가 안성현 선생이었습니다. 그가 아끼던 한 제자가 열여섯의 나이에, 역시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슬픔에 빠진 안 선생은 상여 나가는 노래로 박기동 시인의 ‘부용산’에 곡을 붙였습니다. 이 노래는 제대로 된 악보나 음원이 없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아직도 전남 벌교 사람들이 모이면 이 노래를 합창하곤 한다더군요.

부용산

박기동 詩

부용산 오리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사이로 회오리 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병든 장미는 시들어지고
부용산 봉우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그리움 강이 되어 내 가슴 맴돌아 흐르고
재를 넘는 석양은 저만치 홀로 섰네
백합일시 그 향기롭던 너의 꿈은 간 데 없고
돌아오지 못한 채 나 외로이 예 서있으니
부용산 저 멀리엔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