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돌아올 수 없는 여행, 화성 이주

나는 화성으로 이주를 하게 되었다. 간단히 짐을 쌌다. 비밀의 열차를 탔다.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은 별도의 레일 위에서는 대구에서 서울까지 가는데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속도감이 크게 느껴지진 않았다. 긴장감이 들었다. 동행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함께 셀카도 찍었다. 사람들은 프레임에 제대로 들어올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얼굴 또는 어깨 등이 잘려서 찍혔지만, 나 역시 다시 찍자고 말하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인적이라고는 없는 그 행로에 누군가가 부려놓은 속옷이 보였다. 이게 누구 것이냐고 앞선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원래 있던 것이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 또는 나뭇가지 위에 가방과 옷들을 진열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흡사 관광명소 앞 좌판과 같았다. 목적지에 근접했음을 직감했다. 이건 어쩌면 국경 앞의 면세점 격이었다. 차라리 국경이면 다행이지. 나는 국경이 아니라 행경(行境)을 넘을 운명이었다. 지구의 물건을 챙겨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나는 아무 물건에도 눈길을 두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화성 이민자들은 무사히 도착했다. 도착만 무사했을 뿐, 빠뜨린 것이 많았다. 그중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건 아이폰 충전기였다. 다른 사람들의 충전기는 나에게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지구로 돌아갈 수단은 없다. 나머지 삶을 이곳에서 보낼 수밖에 없는데, 배터리 충전을 어디서 한단 말인가. 점점 닳아갔다. 아내에게 아마 마지막이 될지 모를 전화를 걸었다. 이게 마지막이어선 안된다. 지구, 아니 아내와의 유일한 연결고리를 지켜내야 했다. 그 불 보듯 뻔한, 가까운 미래가 나를 괴롭혔다. 그녀와 단절되는 것은 죽기 보다 싫었다.

배터리 충전기를 구하기 위한 여행을 시작했다. 붉은 사막을 지나 수직 절벽을 기어올랐다. 그 절벽 끝 가장자리에는 중력을 거스르고 앉은 남자가 보였다. 다른 쪽에서 나타난 충걸 형은 나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집안 한쪽에 와인이 두 병이 보였다. 여기까지 오게 된 우여곡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이미 화성에 정착해 있었다. 그 집에서 고아 몇 명을 키우고 있었다. 그 아이들은 공통으로 청각/언어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아이의 상황에 맞게 수화, 구화, 필담, 몸짓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다. 집안은 포근했다. 언어가 이빨을 드러내지 않는 그 순간의 공기가 따뜻했다.1

그러던 중 아까 절벽에서 만난 남자가 만신창이가 되어 집으로 들어왔다. 충걸 형은 그를 치료해줬다. 그러나 효과는 없었다. 나도 뭔갈 해주고 싶었다. 이 화성에는 지구인이 몇 명 되지 않아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의 손을 감싸쥐고 ‘호-‘ 불어줬다. 그가 좋아했다.

아이폰 배터리 충전기를 찾으러 나섰던 친구들 엔죠바세키 역시 빈손으로 돌아왔다. 이 친구들도 화성으로 같이 왔을 줄은 몰랐다.

교훈

나는 단절에 관한 꿈을 자주 꾼다. 지금은 죽지도 않았고, 배터리도 충분하니 연락을 잘하고 살자

  1. 화성 이주 1세대인 나 이전에 누군가가 이곳에 집을 짓고 살고 있다는 점은 크게 놀랍지 않았다. 그때부터 이미 꿈 속인 줄 알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