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집에서 일하시는 분께 바라는 한 가지 : 심심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종이컵 대신 머그잔을!

최근 며칠은 한 달처럼 길었습니다. 올해 세 번째인 업무 협약식을 준비했고, 시?구청 교차점검을 잘 치렀습니다. 공동모금회 지원사업 계획서를 두 개를 마무리 지었으며, 손병걸 시인과 함께 문학기행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제는 집에 오자마자 소파에 쓰러져 무려 11시간을 자 버렸어요. 일하는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적잖은 신경을 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드디어 오늘 금요일. 칼퇴근하고 곧장 집에 들어왔습니다. 창밖으로 선명한 분홍색 노을과 구름이 어우러져 멋진 광경이 보이더군요. 날씨가 아까워 잠깐 산책을 하고, 동네에 새로 생긴 커피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만년 ‘유망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다지’인 이 동네에 용기 있는 청년들이 찾아왔군요. 테라스의 예쁜 선홍색 어닝천막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커피뿐 아니라 맥주와 간단한 안주도 팔고 있군요.

다양한 라이프LIFE 사진집이 진열된 벽 소파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러나 탁자 위를 비추는 조명이 야간공사 작업등처럼 눈부셨습니다. 휴식이 필요한 나에게 밝은 공간은 사무실로도 충분했습니다. 휴식은 몸의 휴식이며, 몸의 휴식은 눈의 휴식이기도 합니다. 어두운 자리로 옮기는 동안 주문한 카푸치노가 종이컵에 나왔습니다. 어? 하며 매우 놀랐더니 종업원도 놀랐습니다.

-왜 놀라세요?
-머그잔이 아니네요
-요샌 다 종이컵이에요
-머그잔은 안 나오나요?
-예 저희는 테이크아웃이 아니더라도

머그잔이 아닌 것에 놀랐습니다. 미리 머그잔을 말했어도 소용이 없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들어오지 않았을 텐데요.

일하는 입장에서는 종이컵이 편리합니다. 이건 명백하지요. 주문자가 머그잔을 말하지 않는 한, 굳이 테이크아웃 할 것이냐는 질문을 꺼내지 않는 이유도 이에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잠깐 들렀다 일어나는 종이컵 손님이 많은 점심때라면 괜찮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게의 방침이 일면 이해됐습니다. 그리곤 계속 ‘아무 짓 안 하기(buffer)’ 상태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빈 탁자 위에 종이컵 하나를 얹어놓고 앉아있자니 금방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머그잔이었더라면 괜찮았을 것이란 확신과 함께 말입니다. 가게의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벅스뮤직 최신 100곡(추정)’ 보다 더 견디기 힘들군요.

‘나는 (지금)할 일이 없어서 여기에 온 거라고’

만약에 당신이 커피집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가끔 제 말을 떠올려주시면 고맙겠어요. 금요일이든 어느 날 저녁, 심심해 보이는 사람이 혼자 어슬렁 가게로 들어온다면 반드시 물어봐주세요. 매장에서 마시고 갈 것인지. 마시고 갈 사람이라면 종이컵이 아닌 머그잔을 내어주세요. 설거지 품과 수도세를 아끼는 쪽 보다 훨씬 이익일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환경오염과는 매우 다른 측면입니다.

이 글을 다 쓰면 식은 커피를 마저 마시고 일어날 예정입니다. 나는 적극적인 소비자가 아니라서 의견을 직접 말해줄 의사가 없어요. 마시고 갈 것이냐는 질문을 받지 못한 것 처럼 말입니다. (뒤끝인가-_-) 다시는 이 가게에 혼자 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 동네에 맥주 친구가 생기기 전까지는요. (사장님, 와이파이 잘 썼습니다.)

심심해서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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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경적인 요인이나 경제적인 요인이나 뭐 이런걸 떠나서 이건 마치 식당에서 음식을 시켰는데 1회용 용기에 담겨 나온 그런 느낌이라 그걸 돈내고 먹는 손님 입장에선 충분히 기분 상할만한 하네

    카페는 커피를 파는 곳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커피만 파는게 아니라 자리와 그 장소? 분위기? 뭐 그런걸 제공하는 서비스라고 생각하는지라 좀 어이가 없긴하다.

    주인 입장에선 머그잔이 아닌 종이컵에 주면 자리에 오래앉아있기 부담스러워 빨리 일어나길 기대한 그래서 자리 회전이 빨리되는걸 기대한 것도 아닌가 싶은데, 글쎄. 이게 득이 될지 독이 될지…

    • 평일

      금요일 저녁임에도 자리회전이 필요할 만큼 손님이 있지는 않았어. 넓은 매장 안에 나 말고 겨우 한 테이블 뿐이었다네. ㅎㅎ

      내 머그잔을 들고 가서 커피를 받으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해봤어. ‘제 잔을 데워주세요’하면 진상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