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6일, 故이영란 교수님 1주기 추모예배에 참석한 날

2008년 10월 마지막 학기, 나는 진로결정을 앞두고 있었다. 취업과 대학원 진학, 정신보건 사회복지사 수련 중 하나를 고민하던 시기였다. 그 결정을 위한 탐색 과정 가운데 서울 서강대에서 열리는 한국가족치료학회 워크샵에 참석했었고, 그때 교수님과 처음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혼자 학회에 참석한 학부생, 게다가 남학생은 흔치 않았기에 쉽게 눈에 띄었을 것 같기도 하다. 교수님은 대학원 진학을 고민 중이던 내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그날 점심 시간, 교수님과 한 테이블에 앉은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품고 있던 질문들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진학 후 교수님의 강의를 몇 번 들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용역사무소 소파에 앉아 침몰하는 세월호를 뉴스에서 봤고, 전원구조 소식을 들었다. 같은 날 오후 교수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그때 여러 가지로 경황이 없어서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 복사기 앞에서 눈물만 잠시 삼켰던 것 같다. 수소문 끝에 교수님의 따님과 연락이 닿았고, 다행히 1주기 추모예배에 참석할 수 있었다. 그때 교수님이 남기신 글 일부를 접했고, 나는 울음을 참지 못했었다.

“지금 이 순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현재 고통을 겪는 다른 모든 분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인생에서 배운 것 중 다른 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것은 바로 ‘함께 하는 것’, ‘같이 나누는 것’의 중요성이다.”

그날은 세월호 1주기였고 비가 왔었다. 유가족과 시민들은 광장으로 나왔고, 잡스럽고 썩은 정부는 경찰을 앞세웠다. 분향소로 향하는 이들의 머리 위로 캡사이신을 뿌렸다. 쓰레기 새끼들… 화학 용액을 뒤집어 쓴 이들은 바로 타인의 슬픔과 ‘함께 하기’ 위해 세월호 광장에 나선 사람들이었다.

서울 우이동 묘소

나 역시,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내가 갖춘 작은 능력들을 다듬어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눌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 나는 자신의 행동과 관계없이 국가와 자본에 지나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연대가 필요한 이들을 떠올렸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더 많이 가지는 것 보다, 더 많이 나누는 삶이었다는 것에서 의미를 찾을 것이다. 그러면 나중에 교수님 만나면 이야기할 것도 많을 테고.

교수님 나중에 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