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소년 김형을 보내며 : 섬은 서로 물 밑으로 이어져 있다

 

2005年 7月

나는 구파발 한양주택 근처 공중전화 박스에서
동아리 방으로 전화를 걸었소.
그때 김형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지.
나는 일면식 없는 사람에게
조국과청춘의 노래 ‘우산’의 코드를 불러달라고 했었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소.
대구에 가서 만나야지 하는 기대감도 있었고 말이요.

2005年 8月 31日

동아리 방 청소하는 날이었고,
아마도 김형과 처음 술을 마신 날일거요.
많이 마셨지.
‘산책’이라는 대안노래패의 창단에 관해 말을 했고
그때 이 사람 아는 것이 많구나 싶었소.

이듬해 3月 30日

우리는 학교 앞에서 술을 마셨소.
함께 있던 여자애는 다른 정류장으로 향했고
우리는 같은 버스를 타고 내렸지.
그때 김형은 ‘지쳤다’는 한숨 섞인 말을 여러번 뱉었소.
우리는 서구청 건너편 편의점에서 ‘씨즈커피’를 즐겨마셨잖소.
그날은 커피를 다 마시기도 전에 김형이 횡단보도를 건너갔소.
그때 대화는 짧았지요.

-가요?
-좀 쉬어야지

2006年 5月 18日

어느 날 갑자기 김형이 나에게 공연을 하자고 했소.
공연 당일에 말이오.
무슨 일인고 하니,
서울에 이어 대구 지역 중증장애인들이
활동보조인 서비스 제도화를 촉구하며 노숙농성에 들어간다 했소.
우리 공연 시간은 그 첫날에 잡혀있다고 했지.

사범대 강의실에서 급히 가사를 찾아보고
짧게 합주를 했던 것 같소.
몇 곡을 불렀는데, 꽃다지의 ‘주문’ 만이 기억에 남는군요.
대구시청 앞 농성장에 갔더니 마이크 한 대,
주먹만 한 앰프 한 대가 고작이어서
공연에 애를 먹었지.
노숙농성 43일 후 대구중증장애인생존권확보연대와
대구시가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에 관한 내용을 합의했소.
훗날 김성욱이 이 일을 하게 될 줄이야.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나의 첫 거리 공연이었던 것 같소.
2008년 6월 윤집시 선배와 팀을 만들기 훨씬 전의 일이로군요.

2006年 10月 15日

김형은 나에게 5만원을 갚았고,
우리는 황제맨션 2차 놀이터에서 흑맥주 6병을 마셨소.

2007年 6月 21日

우린 그 무렵 며칠 동안
낮에 맥주와 레몬리큐르를 많이 마셨소.
김형은 술을 끊기 위해 정신과에서 약을 처방 받았는데
무려 18,000원이나 냈다고 했소.
물론 그 후에도 술은 마셨지만.
우린 너무 철이 없었어.
알코올에 대해 무지했던 것이 정말 후회스럽소.

2007年 9月 22日

그 해 7월과 8월 사이 네팔에 갈 기회가 있었소.
거기서 내가 본 것은 아이들이 공부할 학교가 없다는 것이었지.
학교 건립 자금을 보태주자는 나의 생각에
김형이 동의를 했고, 우리는 지하철 투어 공연을 하기로 했소.
첫 버스킹 장소는 두류역 지하상가였고,
입주 상인들의 환영을 받았던 것을 기억해요?
한 곡이 끝나기도 전에 경비 아저씨한테 쫓겨났지만.
그렇지 않아도 장사 안 되는데, 소란을 피우지 말라면서.
29일에는 비교적 예술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는
교대역에서 공연을 했고, 시민들의 발걸음을 붙잡았소.
그때 나는 11살짜리 남자아이한테
‘아저씨는 꿈이 뭐예요?’라는 질문을 받았었지.
지하철 투어는 단 두 차례에 끝났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한 푼도 벌지 못했소.

2008年 3月

나는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종합사회복지관에서 퇴사했었고,
김형은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던 시절이었지요.
내당동의 내 방 창가에서 이런 저런 술을 섞어 마시면서
싸구려 클래식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던 여러 나날들이 있었어요.
우린 어렸지만 꽤나 어려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던 것 같아요.
김형이 그때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섬은 외로운 것의 상징일 수 없다고 했지요.

나는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곤 해.
섬은 다 따로 인 것처럼 보이지만,
수면 아래로는 하나로 이어져 있다고.

내가 김형을 좋아하는 것은
맛있는 술을 만들어주는 것 뿐 아니라
나의 잦은 우문에 현답을 해주기 때문이라고
그날의 일기에 적혀 있다오.

2010年 2月 14日

김형은 백석의 시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를 좋아했지.
김형은 이런 메모를 남겼어.

백석 형은 왜 이북으로 간 걸까.
외로운 것을 외롭다 하지 않고,
표현 할 줄 아는 사람은 시인이겠지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소.
김형이 외로움을 표현했던 방법을.
그 잦은 방황 속에 외로움이 담겨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할 줄 몰랐던 거요.

2010年 9月 21日

김형의 주유소 방에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불렀소.

2011年 7月 3日

서문시장 역 근처에 있던 김형의 방이었어.
김형은 다양한 술을 모으는 걸 즐기잖아.
그날은 오키나와 소주 ‘아와모리 10년 산’을 모두 마셔버렸지.
그날 사진을 보니 김성욱과 서동재도 같이 있었던 것 같아.
새벽까지 마셨던 것 같아.
바닥에 누워 천장에 상영되는 영화 『소라닌』을 봤지.
그 작은 빔프로젝터가 신기했지.
나한테 달라고 했더니 김형이 싫다고 했소.

소라닌
암튼 우린 그걸 보다가 순식간에 잠이 들어버렸어.
7월 3일에도, 9월 11일에도 우린 그랬나봐.

2011年 7月 23日

김형이 해방촌 게스츠하우스 빈집과
빈가게를 궁금하게 생각해서
내가 길을 안내해줬지.
그날은 회기동단편선과 무키무키만만수의 공연이 있는 날이었지요.
김형의 선생님과 친구들이 함께 와서
그곳의 사람들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눴소.
김형에게는 일행이 있어서
우리가 함께 이야기 나눌 시간이 별로 없었지.
나는 그날 빈집에서 잤소.

2014年 2月 24日

아침 일찍 친구들이 소식을 전해왔소.
그날 밤 대구 장례식 장으로 향했소.
김형이 사장으로 있던 주유소 건너편이더군.
내가 다른 지역을 다니며 적응을 하는 동안
김형은 여전히 대구 서구 비산동에서 살아가고 있었어.
장례식장 유리문을 밀기 직전 두 다리에 힘이 빠지고 떨렸소.
영정 속의 김형은 어쩜 그렇게 맑은 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는지.
자칭은 백면서생일지 몰라도 내가 봤을 땐 영락없는 소년이야.
마음이 미어졌소.
나와 술을 진탕 마시던 때가 좋았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면서요?
뚤린언니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마음이 몹시 아팠소.
그날 밤 김형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술을 많이 마셨으나 취하질 않더군.
영정 사진 속 김형을 떠올린 지금도 눈물이 올라온다오.

그 후로 지금까지 시간이 날 때면
김형의 트위터와 페이스북, 블로그와 미니홈피를 들여다봤는데,
거짓말처럼 다시 돌아올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다오.
김형이 말하지 않는 것은 굳이 묻지 않아왔는데,
김형이 떠나고 나니 모든 것이 궁금해졌소.
묻지 않은 것이 미안하고, 후회스럽소.
힘들다는 흔적들이 이렇게나 많이 읽히는데.

내가 알지 못하는 김형의 역사를 누군가가 말해주면 좋겠소.
김형의 ‘Last days’에 가까이 있었던 인물 중에 한 명인 김성욱이
글로 써서 보여준다고 했소.
내일은 김성욱이 서울에 올라온다고 해서 만나기로 했소.
서동재도 함께.
조각들이 모이면,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은 김형에 대해
알 수 있을 것 같소.

김형은 나와 가장 많은 담배를 태운 사람으로 기억될거요.
그때는 많이 피웠댔었고, 지금은 끊었으니까.
함께 샤워를 하며 담배를 피우던 적도 있었지.
김형의 담배는 늘 청록색 타임멘솔이었지. 아마도.

오늘 저녁 내내 김형이 예전에 알려준 백창우 시인의 노래들을 듣고 있소.
‘나는 사라진다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박정만詩)가 새롭게 들리는군요.

섬은 물 아래로 이어져있다지만
김형이 있는 곳과 여기는 아니잖소.

김형 보고 싶어.
미안하고.
좋은 곳으로 가요.

김형에 관한 또 다른 기억들

 

 

김형이 노래부르는 영상이 있는데, 이 노래를 부르고 있더군요.
김광석 아저씨 만나면 안부 전해주시오.